국제시장은 부산 남포동을 배경으로 만든 작품이다. <해운대>로 잘 알려진 윤제균 감독이 내놓은 신작이기도 한 <국제시장>은 대놓고 아버지 세대의 인내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영화 속 장소가 해운대에 이어서 또 부산인가하고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다른 지역도 많은데 말이다. 그 이유는 감독 자신이 부산 출신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가장 친숙하고, 잘 표현할 수 있는 장소를 작품 속에 녹아내고 싶었기에 '부산'을 또다시 배경으로 삼은 게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촌스러운 헤어스타일에 가르마. 어릴 적 보았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황정민이 연기한 덕수도 얼굴만 빼고는 참 비슷했다. 아버지의 모습과. 철저한 가부장 중심적인 환경에서 남자라는, 장남이라는 이유 하나로 막중한 가장의 임무를 짊어진 덕수.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든 했던 덕수는 돈을 많이 번다는 이유 하나로 독일에 있는 광산도 가고, 베트남 전쟁도 참전한다.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돈을 버는 모습이 처량 그 자체였지만 어찌하랴. 그에게는 아기 새처럼 입을 쩍쩍 벌리며 그가 벌어다주는 돈을 기다리고 있는 식구들이 있는 것을. 여성의 지위가 지금보다 높지 않던 시대라 결혼과 동시에 여성들은 좋든 싫든 전업주부의 삶을 살았다. 덕수의 아내 영자도 그랬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어머니 세대의 안타까움도 느꼈다. 맞벌이를 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그 시대에도 마련되어 있었다면 가장의 희생의 무게도 덜어졌겠지. 그리고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이라는 영역구분을 지은 고리타분한 생각을 가진 이들도 줄어들지 않았을까. 따뜻한 잠자리, 따뜻한 밥을 먹고 사는 요즘세대들에게 윗세대의 이야기들은 그저 잔소리로만 들리고 실감도 안 나겠지만, 한 가지는 잊지 말고 기억해두어야 한다. 지금 우리의 편안함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누군가는 이 편안함을 위해서 희생을 했다는 사실을 잊지말아야한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가서 황정민과 김윤진의 조합은 예상외의 조합이었는데 의외의 케미를 이끌어냈다. 어울릴 줄 몰랐는데 잘 어울려서 놀랐달 까. 그리고 오달수는 감초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 외에 깨알같이 등장한 故 정주영 회장, 앙드레김, 나훈아, 남진은 추억의 버튼을 눌러서 그 시대로 간듯이 마치 향수에 젖는 기분이었다. 남진역의 유노윤호는 너무 잘생겨서 등장씬부터 헉- 소리가 나왔다. 실제 남진이 잘생겼고, 춤도 잘 추고, 전라도 사람이기에 그런 연결고리를 가지고 유노윤호를 캐스팅한 것일까. 아쉽게도 그 연결고리에는 다 부합하지만, 연예계 생활을 하며 표준어를 계속 써왔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유노윤호의 사투리가 조금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래도 짧은 씬에서도 존재감을 뽐낸 유노윤호의 모습은 앞으로 배우 '정윤호' 로서의 모습을 더 기대되게 했다.
2014년 12월 31일. 한해의 마지막날 이 작품을 보며 나는 어머니가 끓여주는 김치찌개가 생각이 났다. 뻔하디 뻔 한 스토리기는 하지만 가족끼리 관람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작품이다. 아, 집밥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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