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The Handmaiden (2016)
오랜만에 박찬욱 감독이 신작을 가지고 돌아왔다. <박쥐> 이후로 7년만의 국내 복귀작인 <아가씨>는 영국의 소설가 사라 워터스의 소설인 <핑거 스미스>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작을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던지라, 박찬욱 감독이 어떻게 영화로 표현해냈을지 궁금증을 가지고 영화관으로 들어섰다.
빅토리아 시대에서 경성으로 자리를 옮긴 아가씨는 박찬욱 감독 특유의 탐미주의가 잘 드러나 있다. 이제까지 그가 만든 작품 중에서 가장 밝고 유쾌하다. 그리고 카메라 앵글 하나하나도 촘촘하고 아름답다.
<아가씨>를 보며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는데, 바로 히데코와 숙희가 도망치며 연달아 다다미문을 여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은 마치 코우즈키가 만들어 놓은 구속의 틀들을 깨부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음 장면에서 이어지는, 정원을 빠져나가는 두 사람을 지붕 위에서 카메라가 잡아주는 씬은 내가 느끼기에는 극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낭독회 장면도 인상 깊었는데, 낭독회 마다 한쪽 벽에 걸려있던 일본어로 적힌 두루마리의 글은 다름 아닌 그 날의 낭독회의 제목이자 글의 제목이었다.
혹자는 이 영화를 보며 단순한 동성 간의 사랑이야기로 느꼈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숙희가 히데코의 억압의 공간인 서재에서 뱀의 머리를 박살내는 장면은 비로소 두 사람의 자유를 의미한다. 그리고 코우즈키의 비참한 최후를 미리 보여주는 복선이기도 하고.
엔딩 씬 에서의 두 사람의 정사는 구슬로 인해 더욱더 의미가 깊어진다. 구슬을 이용한 관계는 코우즈키가 구축해놓은 남성 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난 두 사람을 대놓고 보여주니까. 트라우마 와도 같았던 구슬이 역설적으로 해방의 출구로 작용하는 그 장면은 왠지 모를 쾌감이 들었다. 두 사람의 세계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음이 보였기에.
극 중에서 나오는 대사처럼 <아가씨>는 탁월하게 매혹적이고 아름답다. 왜 박찬욱 이라는 이름을 믿을 수밖에 없는지를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